[Essay] 공대생, 카메라를 들다: 아현동 스튜디오에서의 6개월

[Essay] 공대생, 카메라를 들다: 아현동 스튜디오에서의 6개월

1. “공돌이"는 예술을 모른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첫 장학금을 털어 카메라를 샀다. 이유는 꽤나 반항적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공대생을 ‘공돌이’라 낮잡아 부르며, 인문학적 소양이나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 취급하는 게 싫었다.

“나도 예술적인 활동 하나쯤은 기가 막히게 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읽은 책에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쯤 있는 것"이라는 구절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동경하던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만이 바이올린과 봉고를 수준급으로 연주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왜 악기가 아니라 카메라였나

사실 나도 악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내게 피아노, 바이올린, 하모니카, 리코더까지 안 시켜본 악기가 없으셨다. 하지만 난 연습장에 동그라미만 치며 땡땡이치기 바빴고, 결정적으로 음치에 박치였다. 합창 때 “너는 헷갈리니까 그냥 립싱크만 해라"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말 다 했다.

음악은 내게 동경이 아닌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길을 찾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즐기셨던 취미, 사진이었다. 카메라는 조리개, 노출 시간, 감도(ISO) 같은 기계적인 메커니즘이 있어 공대생인 내가 접근하기 쉬웠고, 셔터만 누르면 결과물이 바로 나오는 직관성이 마음에 들었다.


2. 영혼 없는 셔터질과 첫 전시

그렇게 카메라를 멘 대학생이 되었지만,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1학년 때 사진부 활동을 하며 전시했던 내 작품들을 지금 다시 보면 영혼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첫 작품 창 첫 작품 <창>: 서양의 이모티콘이 입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 착안해 입 모양만 바뀐 사진들을 나열했다.

두 번째 작품 집중 두 번째 작품 <집중>: 시계 장인을 찾아가 작업하는 모습을 연작으로 담았다.

사진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고, 나는 군 입대를 앞둔 2학년 때 휴학을 결심했다. “군대 가기 전에, 사진 한번 제대로 파보자.”


3. 아현동 달동네, ‘수상한 스튜디오’

스튜디오 무작정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대 맞은편 아현동,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진 달동네 언덕 위 지하실에 있는 ‘수상한 스튜디오’였다.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그곳에 찾아가 사장님께 매달렸다.

“청소라도 할 테니 사진 좀 배우게 해주세요.”

사장님은 독특한 분이었다. 보통의 스튜디오처럼 웨딩이나 돌 사진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사진 장비를 리뷰하거나 강의를 나가고, 가끔 들어오는 예술적인 일감만 처리하는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덕분에 나는 청소보다는 사장님의 말동무가 되어 놀거나, 미팅과 촬영 현장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세상을 배웠다. 나보다 10살은 많은 거친 형들과 어울리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삶의 군상들을 마주했다. 그것은 스무 살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4. A4 용지는 사각형이 아니다

6개월간의 스튜디오 생활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배움은 사진 기술이 아닌 ‘인식의 전환’이었다. 어느 날 사장님이 물으셨다.

“A4 용지는 무슨 모양이냐?” “당연히 직사각형이죠.”

그러자 사장님은 종이를 기울여 보이며 말씀하셨다.

“이게 사각형으로 보이냐? 네 눈엔 지금 사다리꼴이나 마름모로 보여야 정상이야. 정면에서 볼 때만 사각형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머릿속에 ‘종이=사각형’이라는 추상적인 정보(지식)만 가지고 세상을 봐. 그러니까 사진을 찍어도 재미가 없는 거야.”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게 아니라 ‘아는 대로’ 보고 있었다. 사진은 그 관념을 깨고, 빛이 들어오는 물리적인 형태 그 자체를 관찰해야만 비로소 ‘사각형이 아닌 종이’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관념을 지우고 시각적 사실(Fact)을 관찰하는 눈. 그것은 엔지니어링이 세상을 구조화하는 방식과는 또 다른, 세상을 감각하는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5. 스튜디오에서의 순간들

스튜디오 내 자리 스튜디오 내 자리

군대 가기 일주일 전 군대 가기 일주일 전 스튜디오 뒤뜰에서 머리 자르는 모습

조명 연습 조명 연습

곰인형 촬영 한여름에 곰인형 모델이 없어 내가 하다가 더워 죽을 뻔한 상황

야외 차 촬영 야외 차 촬영


그때 그 지하실의 쿰쿰한 냄새와, 사각형을 사각형이라 부르지 못하게 했던 그 가르침이 지금의 내 사진을, 그리고 나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