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을 거쳐간 작은 친구들: 까미, 백미, 미미, 똘이 (그리고 열대어들)

우리 집을 거쳐간 작은 친구들: 까미, 백미, 미미, 똘이 (그리고 열대어들)

1.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된 동거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는 늘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2002년 사진 속에 있는 까미가 이미 다 자란 성견이었으니 아마 2000년대 초반부터 함께였을 것이다.

강아지와 고양이는 내가 인지하기도 전부터 집에 있었으니 내 선택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앨범을 보면 내가 녀석들을 껴안고 찍은 사진이 많은 걸 보니, 같이 노는 건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2. 터줏대감 까미와 야생마 백미

은색 요크셔테리어, 까미

우리 집의 첫 터줏대감은 까미였다. 까맣다고 이름을 ‘까미’로 지었다는데, 정작 사진 속에 남아있는 색은 죄다 은색이다. 암컷이었던 까미는 나랑 여동생을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잘 따르지도 않았다. 아마 우리가 어려서 간식도 안 주고 귀찮게만 하니, 마지못해 놀아줬던 것 같다. 부모님만 졸졸 따랐다.

그래도 정말 영특했다. 집을 잃어버리고도 스스로 찾아올 정도였으니까. 평소엔 아주 얌전하고 온순해서 같이 지내던 백미나 미미가 장난을 쳐도 괴롭히거나 싸우는 법이 없었다. 자기가 귀찮을 때만 살짝 성질을 부리는 정도였다.

하얀 솜뭉치, 백미

그다음 우리 집에 온 건 고양이 백미였다. 까미랑 짝을 맞춰주려고 내가 이름을 백미라고 지었는데, 어릴 때라 성별 확인을 못 해서 그냥 불렀더니 알고 보니 수컷이었다. 어머니가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왔는데, 야생 출신이라 그런지 성격이 보통이 아니었다.

만지려고 하면 할퀴고, 항상 높은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다가 조금만 움직이는 게 있어도 튀어와서 덮쳤다. 까미를 괴롭히진 않았는데 우리 남매가 만만했는지 자주 공격당했다. 대신 나이 든 까미에 비해 아주 활동적이라 집 소파를 죄다 뜯어놨던 기억이 난다.


3. 너무 일찍 찾아온 이별,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진실 (멜라민 파동)

2004년, 백미가 온 지 몇 달 안 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얼마 뒤 까미도 죽게 된다. 당시엔 백미가 밖에서 병을 얻어왔고, 까미는 나이가 들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2008년 멜라민 사료 파동과 관련된 죽음이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사료 회사들이 단백질 함량을 높이기 위해 공업용 플라스틱 재료인 멜라민을 사료에 섞어 유통했던 끔찍한 사건이었다. (관련 기사: 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백미는 애기라 좋은 걸 먹이겠다고 비싼 로얄캐닌을 먹였는데, 그 사료가 문제였다. 까미는 백미 밥이 맛있어 보였는지 뺏어 먹다가 변을 당했다. 백미는 어려서 금방 죽었고, 까미는 성견이라 조금 더 버티다 죽은 것이었다. 당시엔 동물병원도 활성화되지 않았고, 그저 컨디션 난조라고만 생각했지 사료 문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백미는 짧게 머물러서 슬픔이 덜했지만, 까미는 함께한 세월이 길어 많이 슬펐다. 아버지랑 뒷산에 올라 묻어줬던 기억이 난다.


4. 요리왕 비룡과 베란다 사건: 미미

백미가 죽고 얼마 뒤, 어머니는 또 다른 고양이 미미를 데려오셨다. 주먹보다 작아서 분유를 주사기로 먹여야 했던 완전 꼬맹이였다. 얘도 어미가 버린 걸 주워 오셨다는데 도대체 어머니는 어디서 그렇게 데려오시는지 모르겠다.

이름은 내가 지었다. 당시 ‘요리왕 비룡’을 보고 감동받아서 ‘미미(美味)‘라고 지었는데, 얘도 수컷이었다. (나는 성별과 반대로 이름을 짓는 능력이 있나 보다.) 다행히 미미는 사료가 아니라 분유를 먹어서 멜라민 파동을 피했다.

미미와 관련해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어릴 때 하도 날뛰어서 잠시 베란다에 목줄을 해놨었는데, 우당탕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가보니 미미가 나무를 오르내리다가 목줄이 나뭇가지에 엉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목이 졸린 채 바둥거리는 걸 보고 기겁해서 뛰어가 줄을 끊어주었다. 하마터면 우리 집 고양이가 또 갈 뻔했다…

가필드를 닮아 얼굴에 점이 콕콕 박힌 미묘였지만, 성격이 썩 좋진 않았다. 그래도 까미랑도 잘 지냈고, 나중에 똘이가 괴롭힐 때도 얌전히 도망만 다니던 착한 녀석이었다.


5. 미친 활동량의 슈나우저: 똘이

몇 년 뒤 우리 집에 똘이가 왔다. 이름의 유래는 간단하다. ‘또라이’ 같아서 똘이라고 지었다. 얌전했던 요크셔테리어 까미와 달리, 이 꼬맹이 슈나우저는 정말 미친듯이 날뛰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고, 자기보다 덩치 큰 미미 형한테 장난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좀 크고 나니까 미미 목줄을 입으로 잡아당겨서 질질 끌고 다니며 괴롭히더라.

나와 까미 나와 까미


6. 나의 대학 시절을 함께한 똘이

미미와 똘이는 정말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살았다. (미미: 04년~22년 / 똘이: 06년~21년) 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거치며 바빠지는 동안 녀석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대학생 때, 집(종로)과 학교가 가까워 일찍 귀가해서 과제를 하고 있으면, 안방에서 똘이가 늑대처럼 “아우~” 하고 울며 나를 불렀다. 심심해서 나를 찾는 거였다. 그게 짠해서 짜증을 내면서도 똘이를 데리고 참 많이 돌아다녔다.

  • 학교 대동제(축제): 시끄러운 축제 현장도 같이 갔다.
  • 동아리방 & 신문사: 후배한테 잠깐 맡겨놓고 전공 시험을 보러 가기도 했다.
  • 술자리: 친구랑 1층 술집에서 술 마실 때, 가게 안에 못 들어가니 가로수에 묶어뒀었다. 손님이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어, 유기견 아니야? 센터 보내야겠네” 하길래 화들짝 놀라 뛰쳐나가 “우리 집 개예요!” 했던 적도 있다.
  • 산책: 전시 보러 대림미술관 갈 때 청계천 따라 데려가서 화단에 묶어놓고 보고 오고, 낙산공원도 자주 갔다.

집에 와서 똘이를 볼 때마다 불쌍했다. 우리는 밖에서 넓은 세상을 보는데, 똘이는 안방에서 미미랑만 지내며 우리만 기다리니까. 녀석들에겐 우리 집이 세상의 전부인데 우리는 그 세상에 잠깐씩만 머무는 것 같아 늘 미안했다.


7. 죄책감과 이별

그러다 똘이가 아프기 시작했다. 심부전이었다. 사실 죄책감이 든다. 대학생 때 똘이가 하도 먹고 싶어 하길래 포도 껍질을 줬었다. 그날 다 토하고 난리가 났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포도가 강아지에게 신장을 망가뜨리는 치명적인 독이었다. 내 무지가 똘이를 아프게 만든 건 아닌지 가슴이 아팠다.

아픈 똘이는 여동생이 데려가서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하지만 마지막이 다가오자 어머니 집으로 보내야 했는데, 나는 우리 집에 데려오기가 너무 싫었다. 내가 출근한 사이 죽거나, 운전해서 이동하는 도중에 잘못될까 봐 그 상황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동생이 기차를 타고 부모님 댁으로 데려갔고, 며칠 뒤 똘이는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에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더 잘해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 다음날 휴가를 내고 화장을 하는데,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가 사라진 것 같아 참 허탈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한 달 뒤, 미미도 아무 전조 증상 없이 죽었다. 우리는 미미가 평생 친구였던 똘이를 따라간 거라고 생각했다.


8. 상실이 두려워 선택한 열대어, 그리고 생명의 무게

똘이와 미미를 보내고 다짐했다. “나보다 먼저 죽을 존재는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 그 상실의 슬픔을 다시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다니며 혼자 사는 자취방의 적막함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타협점으로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죽어도 덜 슬플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생명을 키우는 무게는 똑같았다.

  • 전염병: 수족관에서 새로 사 온 물고기 때문에 전염병이 돌아 하루에 수십 마리씩 죽어 나갈 때, 집에 있는 냄비와 그릇을 총동원해 격리시키며 살리려고 발버둥 쳤다.
  • 수술(?) 집도: 엔젤피쉬가 부레병으로 옆으로 누워있을 때 주사기로 공기를 빼주기도 했고, 상처 입은 물고기는 전쟁터 응급처치처럼 순간접착제로 상처를 봉합해 보려고도 했다.
  • 안락사: 꼬리가 기형적으로 길어 헤엄을 못 치는 구피를 위해 내 손을 얼음물에 담가 체온을 낮춘 뒤 꼬리를 잘라주기도 하고, 가망 없는 녀석들은 가장 고통이 적다는 동사(얼음물)로 안락사를 시켜주기도 했다.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책임감은 덜해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생명을 보는 건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고 고통이었다. 결국 분당으로 이사 오면서 7년간 키우던 열대어들을 모두 정리했다.

더 이상 생명의 무게를, 그 이별의 과정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기록:

  • 까미: 2000년대 초 ~ 2004.08
  • 백미: 2003.09 ~ 2004.02
  • 미미: 2004.06 ~ 2022.01
  • 똘이: 2006.10 ~ 2021.12

안녕, 나의 작은 친구들.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신나게 뛰어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