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카롱의 나라에서 '진짜' 마카롱을 찾아 헤매다 (feat. 피에르 에르메의 귀환)

뚱카롱의 나라에서 '진짜' 마카롱을 찾아 헤매다 (feat. 피에르 에르메의 귀환)

단것을 싫어하는 나의 유일한 예외

나는 원래 단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초콜릿이나 사탕을 내 돈 주고 사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 내게도 예외가 하나 있다. 바로 마카롱이다.

입에 넣는 순간 ‘파사삭’ 하고 부드럽게 부서지는 꼬끄(Coque),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필링이 어우러져 만드는 식감은 단순히 ‘달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구름을 한 입 베어 문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이 ‘프랑스식 마카롱’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뚱카롱의 습격, 그리고 원조의 철수

사실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프랑스 마카롱의 양대 산맥인 라뒤레(Ladurée)피에르 에르메(Pierre Hermé)가 한국에 진출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 라뒤레: 2012년 신세계 강남점에 입점해 2017년 철수
  • 피에르 에르메: 2014년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 들어왔다가 2016년 철수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한국식으로 변형된 마카롱, 일명 ‘뚱카롱’이 들어찼다. 필링을 햄버거 패티처럼 두껍게 채워 넣고, 온갖 과자와 과일을 꽂아 넣은 뚱카롱은 인스타그래머블한 비주얼로 한국 시장을 장악했다.

이 기현상을 두고 언론에서도 꽤 시끄러웠다.

“뚱카롱 아시나요? 한국에만 있는 뚱뚱한 마카롱” [중앙일보, 2019]

“마카롱은 왜 한국에서 ‘뚱카롱’이 됐을까” [경향신문, 2019]

어느 기자는 “뚱카롱은 이제 한식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뚱카롱이 좋은 이유로 “쫀득해서 좋다”고 말할 때, 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마카롱은 쫀득한 떡이 아닌데…

마카롱 꼬끄는 온도, 습도, 반죽 횟수(마카로나주)에 예민해서 제대로 된 식감(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움)을 내기가 굉장히 어렵다. 숙련도가 부족하면 터지거나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래서 덜 익히거나 오버 베이킹을 해서라도 모양을 잡으려다 보니 특유의 ‘쫀득한(사실은 질긴)’ 식감이 유행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부족한 맛을 과도한 필링으로 덮으려던 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2014년 파리, 에펠탑 앞의 부서진 마카롱

내가 처음 ‘진짜’를 만난 건 2014년, 군 제대 직후 떠난 프랑스 여행에서였다.

가난한 배낭 여행자였기에 유명한 살롱 드 떼는 엄두도 못 냈고, 샹젤리제 거리 뒷골목의 동네 빵집에서 마카롱 몇 개를 샀다. “에펠탑 보면서 먹어야지"라는 야무진 꿈을 안고 종일 들고 다녔는데, 막상 에펠탑 앞에 도착해 봉투를 열어보니 마카롱은 처참하게 으깨져 있었다.

에펠탑 앞에서 찍은, 다 찌그러진 마카롱 사진 에펠탑 앞에서 찍은, 다 찌그러진 마카롱 사진

하지만 그 찌그러진 조각을 입에 넣은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미식의 순간 중 하나로 남아있다. 이가 닿자마자 스르르 무너지는 구름 같은 식감, 그리고 뒤이어 퍼지는 고급스러운 단맛. 혼자 자전거까지 끌고 갔던 고된 유럽 여행의 피로가 그 한 입에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는 마트인 까르푸 지하 빵집에서 사 먹는 마카롱조차 훌륭했다. 프랑스인들에게 마카롱은 특별한 날의 사치가 아니라 일상의 행복이었다.

프랑스 여행 중 찍은 큰 사이즈 마카롱 사진 프랑스 여행 중 찍은 큰 사이즈 마카롱 사진

프랑스 길거리에서 발견한 마카롱들 프랑스 길거리에서 발견한 마카롱들

프랑스의 또 다른 마카롱 가게 프랑스의 또 다른 마카롱 가게

프랑스 여행에서 먹었던 마카롱 프랑스 여행에서 먹었던 마카롱


한국에서의 방황, 그리고 “이 맛이 아니야”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맛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뚱카롱이었고, 정통을 고수하던 가게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나마 안국역 근처의 ‘아몬디에(Amandier)’가 프랑스인 셰프(피에르 에르메 출신)가 있어 제대로 된 맛을 냈지만, 그마저도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한번은 당시 여자친구가 나를 위해 유명하다는 마카롱(뚱카롱)을 사다 주었는데, 눈치 없이 “이건 내가 알던 마카롱 맛이 아니야. 프랑스 원조는 말이지…”라며 라떼는 시전을 하다가 대판 싸우기도 했다. (미안해, 하지만 맛은 타협할 수 없었어.)

한국에서 유행했던 뚱카롱 사진 한국에서 유행했던 뚱카롱 사진

또 다른 뚱카롱 스타일 또 다른 뚱카롱 스타일

과도하게 큰 뚱카롱 과도하게 큰 뚱카롱

그리운 아몬디에 마카롱 사진 그리운 아몬디에 마카롱 사진

아몬디에의 정통 마카롱 아몬디에의 정통 마카롱


빵에 대한 나의 확고한 취향 (feat. 크루아상)

마카롱뿐만 아니라 나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크루아상도 좋아한다. 특히 크루아상은 버터의 풍미와 함께, 엄마손파이처럼 한 겹 한 겹 얇게 바스라지는 결이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크로플이나 크룽지 같은 유행을 보면 조금 분개하곤 한다. 파티시에가 그 결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힘들게 반죽을 접고 펴고를 반복했는데, 그걸 와플 기계로 꾹 눌러 떡을 만들어 버리다니! (물론 맛은 있지만, 크루아상에 대한 모독 같달까.)

한국 빵집 중에서는 다음 곳들을 좋아한다.

  • 대전 성심당: 말이 필요 없는 국민 빵집
  • 나폴레옹 제과점: 사라다빵도 좋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
  • 부산 OPS: 이곳의 ‘슈크림’은 정말 사랑이다.
  • 수원 하얀풍차: 삼성 다닐 때 집 근처라 자주 갔다. 치즈바게트가 유명하다.
  • 그 외 김영모 과자점, 리치몬드

부산 OPS의 빵들 부산 OPS의 빵들

빵과 함께한 나의 추억 빵과 함께한 나의 추억


드디어, 왕의 귀환?

한국에서 마카롱 유목민 생활을 하며, 여행지(시드니의 라뒤레, 일본 등)에서나 갈증을 채우던 내게 희소식이 들려왔다.

시드니에서 먹었던 라뒤레 사진 시드니에서 먹었던 라뒤레 사진

프랑스 라뒤레의 본 모습 프랑스 라뒤레의 본 모습

어제 웹툰 <재벌의 품격>을 보다가, 피에르 에르메가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는 내용을 보게 된 것이다! 찾아보니 파크 하얏트 서울과 안다즈 서울 강남에 입점했다고 한다.

예전에 생일 선물로 피에르 에르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냉동이라 마카롱 꼬끄의 식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쉬웠었다.

선물 받았던 피에르 에르메 아이스크림 케이크 선물 받았던 피에르 에르메 아이스크림 케이크

프랑스에서 먹었던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 프랑스에서 먹었던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

조만간 가봐야겠다. 10년 전 파리의 그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