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공대생, 신문사에 던져지다: 고대신문 활동 회고록

[Essay] 공대생, 신문사에 던져지다: 고대신문 활동 회고록

마지막 편집실 편집실풍경

1. 군대 선배의 꼬임과 사진기자 지원

고대신문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군 생활 중 만난 선배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전역하면 꼭 고대신문 들어가 봐. 동기들이랑 엄청 돈독해지고, 언론사 친구도 생기고, 활동이 진짜 재밌어.”

전역 후, 그 말만 믿고 신문사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신문사에 들어가려면 논술과 작문 테스트를 거쳐야 했는데, 글 좀 쓴다 하는 인문계열 친구들이 몰려 경쟁이 치열했다.

글쓰기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일종의 ‘편법’을 썼다. 상대적으로 지원자가 적은 사진기자로 지원한 것이다. 전략은 적중했고, 나는 수습기자 명찰을 달 수 있었다.


2. “청소는 수습만 해?” 신문사를 박차고 나가다

하지만 첫 편집실 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나는 군대까지 다녀온 복학생이었는데, 신문사 내의 경직된 위계질서가 나를 맞이했다.

사건은 주간 회의 날 터졌다. 관리자급 선배가 수습기자들에게만 청소를 시킨 것이다. “회의 전에 청소 좀 해라.”

둘러보니 수습을 제외한 다른 기자들은 오지도 않았거나, 와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욱하는 마음에 따져 물었다.

“우리만 청소하는 건 부당합니다. 다 같이 하시죠.”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그럼 안 온 수습기자들 다 불러와.”

그날은 시험 기간이었고, 회의 공지도 당일에 떴기에 동기들 참여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부당함에 대해 언성을 높이다가 그대로 가방을 싸서 신문사를 박차고 나갔다.

나중에 동기에게 들으니, 다들 내가 그대로 그만두는 줄 알았다고 한다. 사실 그만둘 생각까진 없었고, 단지 그 부조리한 상황에 화가 났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그 이후로도 활동은 계속했다.)


3. 공대생, 세상의 이면을 뷰파인더로 보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신문사 생활은,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되었다.

공대생으로서 나는 사회 문제에 무지한 편이었다. 하지만 신문사에는 식량 안보, 페미니즘, 노동 문제 등 사회 현안에 진심인 인문/사회 계열 친구들이 가득했다. 그들과 기사를 두고 비평하고 밤새 토론하면서, 나는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배울 수 있었다.

발로 뛰었던 현장의 기억들

나는 글 기자들처럼 금요일 밤을 새워 마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들이 “야, 여기 좀 찍어줘"라며 나를 부를 때마다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20명의 글 기자가 나 하나를 찾았으니, 몸은 고됐지만 그만큼 강렬한 경험들이 남았다.

한번은 화재가 발생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매캐한 연기와 열기 속에서 “이걸 찍어야 한다"는 본능만 남았던 순간이었다.

대림동 취재

또 기억에 남는 건 조선족 관련 기사를 위해 대림역을 찾았을 때다. 커다란 DSLR을 들고 골목을 누비는데, 걷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그 서늘하고 무서웠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외에도 식용 개 문제를 취재하러 모란시장 영양원을 뒤지고, 노숙자 기획 기사를 위해 동기와 함께 다리 밑 거주촌 깊숙이 들어가기도 했다.


4. 삼성전자 임원 면접: “고대신문, 정치적인 곳 아니냐?”

신문사에서의 경험은 뜻밖의 장소에서 빛을 발했다. 바로 삼성전자 임원 면접장이었다. 면접관이 내 이력을 보더니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면접관: “고대신문 하셨네요? 거기 운동권이나 정치적인 색깔이 강한 동아리 아닙니까?”

그리고 이어진 결정타.

면접관: “그럼 본인은 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기업 면접에서 가장 예민한 질문. 하지만 나는 신문사에서 수많은 친구들과 토론하며 길러온 ‘균형 감각’을 믿기로 했다.

나의 답변

“고대신문 활동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노조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1. 필요성: 노동자의 단일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조는 분명 필요한 존재입니다.
  2. 비판: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일부 강성 노조는 극단적인 쟁의 활동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또한, 전체 노동자가 아닌 가입된 정직원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3.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는 ‘노사협의회’라는 기구를 통해 해당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기에, 건강한 노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나름 순발력 넘치는 답변이었다. (합격했으니 면접관님도 납득하셨으리라 믿는다.)


5. 마치며: 가치관을 선물해 준 친구

신문사 활동은 군대를 막 전역한 복학생에게 친구를 만들어준 고마운 동아리였다.

동기들과 환호

발행된 신문을 들고 함께 환호하던 동기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더 큰 의미는,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없었던 ‘무지한 공대생’에게 세상의 복잡함과 다양함을 알려준 ‘선생님’이었다는 점이다.

뷰파인더 너머로 치열하게 세상을 담았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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