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비만 해방 (The End of Overeating / Fast Carbs, Slow Carbs)
저자: 데이비드 A. 케슬러
1. 시작하며: 새해 다짐과 원치 않았던 만남
새해를 맞아 책 좀 읽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하지만 첫 번째 선정 도서인 『비만 해방』의 제목을 본 순간, 구매 의욕이 뚝 떨어졌다. 내 취향도 아닐뿐더러 굳이 돈을 주고 소장하고 싶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책장을 덮은 지금,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아니, 오히려 의문만 남았다. “도대체 저자는 독자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명쾌한 해결책도, 새로운 통찰도 부족하다.
2025년, 챗GPT 같은 AI가 초단위로 정보를 요약해 주는 세상에 이런 모호한 내용을 굳이 책으로 출판해야 했을까? 차라리 잘 정리된 블로그 포스팅 하나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2. ‘초조제 식품’ 공포 마케팅과 MSG 괴담의 데자뷔
저자는 책 초반부터 ‘초조제 식품(Ultraformulated Food)’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며 밀가루, 설탕 같은 가공식품을 ‘새로운 담배’라고 규정한다. 식품 회사들이 니코틴처럼 중독성을 숨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시작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저자는 가공된 다당류(밀가루 등)를 악마화하지만, 사실 자연 상태의 과일에 들어있는 과당(단당류)이 다당류보다 흡수가 훨씬 빠르다. 과일이 비타민과 식이섬유를 포함한다고 해서 과당 자체가 다당류보다 무조건 안전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과학적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호소에 가깝다.
게다가 설탕과 소금 같은 정제 조미료는 인류의 식생활을 풍요롭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백종원 대표의 유튜브만 봐도 알 수 있다. 설탕 한 스푼이면 해결될 단맛을 내기 위해 양파를 볶고 과일을 갈아 넣는다면, 요리는 노동이 되고 식사는 고역이 된다.
현대의 조미료 없이 요리하라는 건, 우리더러 다시 찐 감자와 고구마 원물만 먹으며 살라는 말과 다름없다. 마치 과거 MSG가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인 양 호도하던 시절의 공포 마케팅을 다시 보는 듯한 불쾌감이 들었다.
3. 미국이라는 특수성: 급식판 위의 비극
저자의 극단적인 식품관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던 중, 그의 이력(소아과 의사, 전 FDA 국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미국’ 사람이다.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미국의 학교 급식을 떠올려보자. 미국의 학교 급식법은 예산 절감과 식품 로비스트들의 영향으로 인해 기형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토마토 페이스트가 발려 있다는 이유로 피자를 ‘채소’로 분류하고, 감자튀김과 초콜릿 우유, 정체불명의 너겟이 식판을 채운다. 신선한 원재료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 자리를 저급한 가공식품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의 비만을 목격해 온 소아과 의사이자 FDA 국장이라면, 가공식품 전체를 싸잡아 ‘악’으로 규정하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한국의 독자인 나에게는 그 공포가 피부로 와닿지 않는 과장된 외침일 뿐이다.
4. GLP-1: 혁신적인 약물과 저자의 위선
책 중반부, 다이어트 약물인 GLP-1(위고비, 마운자로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흥미가 생겼다. 비만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체중 감소에 저항하는 신체의 항상성 시스템 때문이라는 설명은 납득이 갔다. GLP-1은 뇌의 식욕 중추를 조절해 운동 없이도 살을 빼게 해주는 혁신적인 약물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저자의 태도다. 그는 GLP-1의 부작용(영양실조, 탈수, 근손실 등)을 나열하며 어린이 사용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의사의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마치 이 약이 아직 검증되지 않은 위험물질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정작 저자 본인은? 그는 중증 비만 환자도 아니면서, 미용 목적(혹은 경도 비만 관리)으로 아주 초기부터 이 약을 사용해 체중을 감량했다. 본인은 이미 혜택을 다 누려놓고, 독자들에게는 “부작용이 무서우니 조심하라”고 겁을 준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본인이 겪은 메스꺼움 정도를 대단한 영양학적 위기인 것처럼 과장하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왔다. 안전성을 그토록 우려한다면 본인부터 보수적으로 접근했어야 하지 않나?
5. 합리적 의심: 공중보건의 영웅인가, 투기꾼인가?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는 의구심이 하나 있었다. 저자는 겉으로는 부작용을 경고하는 척하지만, 실질적으로는 GLP-1의 효과를 찬양하는 데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이쯤 되니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 혹시 일라이 릴리나 노보 노디스크 같은 제약회사 주식을 샀나?”
예전 같았으면 전 FDA 국장이라는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발언과 관련된 주식에 투자한다는 건,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부정행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미국의 대통령이 될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을 딴 코인을 상장하고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모습을 보면, 이제 ‘공직자의 윤리’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저자 역시 겉으로는 공중보건을 외치지만 뒤로는 자본의 흐름에 올라탔을지도 모른다는 냉소적인 생각이 드니, 책의 내용이 더욱 가볍게 느껴졌다.
6. 환경은 운명이다: 삼성전자, 그리고 탕비실의 콜라
저자가 말한 내용 중 유일하게 깊이 공감하며 내 삶을 돌아보게 한 부분은 ‘식문화와 환경’에 대한 것이다.
나의 식습관은 철저히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환경 덕분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서 군것질은 금기였고, 치킨이나 피자는 1년에 한 번 생일 때나 먹을 수 있는 기념 음식이었다. 집이나 식당에서 콜라를 마신 기억조차 없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대학 친구들은 치킨을 매주 시켜 먹었고, 기숙사에서는 밤마다 야식 파티가 열렸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저녁 늦게 먹는 것이 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에 나는 그 문화에 동참하지 않았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전자에 다닐 때는 회사에서 콜라를 제공하지 않아 마실 일이 없었는데, 이직한 지금 회사는 탕비실에 콜라가 구비되어 있다. 점심시간 급식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콜라를 마시는 동료들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밥을 먹으며 탄산음료를 마시는 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던 것이다.
저자가 미국의 식품 환경을 비판한 맥락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다. 어릴 때 형성된 입맛과 주변 환경은 무섭도록 강력하다. 내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내 의지가 아니라, 부모님이 물려주신 건강한 ‘식문화’ 덕분이었다.
7. 결론: 그래서 어쩌라고?
책을 덮으며 머릿속에 정리된 내용은 딱 세 줄이다.
- 식품 회사가 만든 맛있는 음식들이 뇌를 중독시켰다. (알고 있다.)
- GLP-1 주사는 효과가 엄청나서 나도 맞고 살 뺐다. (부럽다.)
- 근데 부작용 있으니까 너희는 조심해서 써라. (어쩌라고?)
이 책은 비만의 원인을 파헤치는 척하지만, 결국 저자의 개인적인 체험담과 훈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었다.
다만 한 가지,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비추어 볼 때 ‘나만의 건전한 식문화를 지키는 것’만이 이 혼란한 식품의 세계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임을 재확인했다.
2025년의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뻔한 훈계보다 더 명확하고 솔직한 정보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