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나 티스토리 같은 플랫폼이 아닌, 내 도메인을 가진 개인 블로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자유’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에는 언제나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고민이 뒤따릅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글의 시간을 언제로 정의할 것인가?” 에 대한 문제입니다.
1. 작성 시작일 vs 발행일: 단순한 고민
가장 일차원적인 고민은 이것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날(Start)을 기준으로 할까, 아니면 다 쓰고 배포한 날(Publish)을 기준으로 할까?”
- 작성 시작일: 내가 해당 소재를 떠올리고 사고하기 시작한 시점.
- 발행일: 대중에게 글이 공개되어 읽힐 수 있게 된 시점.
과거 고대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신문은 ‘인쇄 날짜’라는 물리적이고 명확한 마감 기준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내 개인 블로그는 마감에 쫓겨 발행되는 매체가 아닙니다.
문득 회계 원칙이 떠오릅니다. 회계에서는 현금이 오가는 시점이 아닌, 실질적인 수익 활동이 일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발생주의(Accrual Basis)’를 따릅니다.
“회계 인식 시점은 현금 수취 시점이 아닌, 수익이 실현되거나 실현 가능해졌을 때이며, 일반적으로 재화의 인도 시점 또는 용역 제공 완료 시점에 수익을 인식하고, 관련 비용도 이때 함께 인식한다.” (수익-비용 대응 원칙)
글쓰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생각이 정리되어 ‘완료’된 시점이 글의 수익(가치)이 실현된 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글을 쓰는 데 며칠씩 걸리지 않는다면, 시작일과 발행일의 차이는 크지 않기에 이 고민은 비교적 가볍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2. 과거의 경험을 현재에 기록할 때: 진짜 딜레마
문제는 오래전 일을 이제야 글로 옮길 때 발생합니다.
얼마 전 작성한 모수(MOSU) 방문기가 그렇습니다. 방문은 6개월 전에 했고 사진도 그때 찍었지만, 그 경험을 텍스트로 정리한 건 ‘현재’입니다.
- 사건의 시점: 6개월 전 (과거)
- 기록의 시점: 오늘 (현재)
이 간극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여기서 저는 역사학의 고전, E.H. Carr(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펼쳐봅니다.
“History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그리고 저를 더 혼란스럽게, 동시에 명확하게 만든 문장이 있습니다.
“The facts speak only when the historian calls on them.” (사실은 역사가가 그들을 호출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6개월 전의 식사는 ‘사실(Fact)‘로 존재했지만, 제가 오늘 블로그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호출),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는 그저 묻혀있는 데이터에 불과했습니다. 즉, 내가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과거의 사실을 역사로 만드는 순간입니다.
3. 독자에게 가치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하지만 관점을 ‘나(역사가)‘에서 ‘독자’로 돌려봅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이 2025년에 쓰였는지보다, 그 사건이 1950년에 일어났다는 정보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후대 사람이 기록했더라도, 그 기록의 인덱스는 ‘사건 발생일’에 찍혀 있어야 정보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어차피 내 블로그는 Git으로 관리됩니다. 내가 이 글을 언제 코딩하고 커밋(Commit)했는지에 대한 ‘작성 시점’의 진실은 Git 로그에 영원히, 아주 정확하게 남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읽는 독자에게 “내가 이 글을 언제 키보드로 쳤는가"는 무가치한 정보(TMI)에 가깝습니다. 독자에게 중요한 건 “이 사건(경험)이 언제 일어났는가”입니다. 6개월 전의 모수 리뷰를 오늘 날짜로 발행한다면, 마치 어제 다녀온 것처럼 오해를 줄 수도 있으니까요.
4. 결론: 사건이 발생한 날을 기록한다
그래서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의 글쓰기 행위(Writing)가 현재에 일어났더라도, 글의 메타데이터인 Date는 ‘사건이나 경험이 발생한 날’을 기준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 Git Log: 나의 작성 역사를 증명 (작성 시점)
- Blog Post Date: 사건의 맥락을 전달 (발생 시점)
이것이 디지털 세상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기록하는, 저만의 ‘발생주의’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