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죽음을 박제하는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Art] 죽음을 박제하는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

예술에 관한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려 고민하던 중, 역시 가장 먼저 다뤄야 할 사람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라는 결론을 내렸다.

원래는 뱅크시(Banksy)에 대한 글을 먼저 쓸까도 생각했다. 데미안 허스트가 2026년에 한국(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그때까지 아껴둘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애"를 두고 다른 작가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짧게나마 그에 대한 나의 생각과 기록을 남겨본다.

1. 은밀한 갤러리, 그리고 상어

처음 데미안 허스트를 알게 된 건 <은밀한 갤러리 (The $12 Million Stuffed Shark)>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현대 미술 시장의 뒷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그 중심에 허스트가 있었다. 영국의 전설적인 광고 재벌이자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와 그의 회사 ‘사치 앤 사치’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허스트에게 투자하고, 마케팅적으로 그를 ‘스타 작가’로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그를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작품은 1991년 작,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다. 찰스 사치의 전폭적인 의뢰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거대한 뱀상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이 담긴 수조에 통째로 넣어 전시한 것이다. 갤러리 한복판에 떠 있는 죽은 상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공포와 충격을 선사했다.

2. 파리와 소머리, 그리고 박제된 모순

사실 상어 이전에도 그는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A Thousand Years 1990년 작 <천년 (A Thousand Years)>이 대표적이다. 유리관 안에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소머리를 두고, 그곳에서 파리들이 태어나 고기를 먹고 알을 낳는다. 하지만 소머리 위에는 전기 파리채가 설치되어 있어 파리들은 결국 타죽게 된다. 삶과 죽음이 끝없이 순환하는, 마치 지독한 윤회(꿳廻)를 시각화한 듯한 작품이다.

This Little Piggy Went to Market, This Little Piggy Stayed at Home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6년 작 <This Little Piggy Went to Market, This Little Piggy Stayed at Home>은 영국의 전래 동요 가사를 제목으로 차용했다. 돼지 한 마리는 원형 그대로, 다른 한 마리는 반으로 갈라 포름알데히드에 담갔다. “이 돼지는 집으로 갔고…“라는 동요 가사와 달리, 집으로 갔다는 돼지조차 차가운 용액 속에 박제되어 있는 모순. 동심 어린 제목과 잔혹한 현실의 괴리는 경악 그 자체였다.

스타일의 변화: 그로테스크에서 정제로

초기의 날 것 그대로의 죽음(파리, 썩은 소머리)은 점차 나비 시리즈나 약장(Medicine Cabinets), 알약 시리즈처럼 정제된 형태로 변해갔다. 초기작들은 컬렉터들이 집에 두기엔 관리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고 명성을 얻으며 그 역시 조금은 몸을 사리게 된 걸까? 어쨌든 후기로 갈수록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은 줄어들고 세련된 디자인적 요소가 강해졌다.

3. 한국에서 만난 데미안 허스트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을 몇 점 만날 수 있었다.

나비 리움작품은 원형으로 된 버전이랑 그림에 있는것 중 좌측에 있던 것만 있는 모양이였다. Medicine Cabinets 골든레전드

  • 리움 미술관: 예전에 상설 전시로 나비 시리즈와 약장 시리즈를 본 기억이 난다. 2014년쯤 처음 봤는데, 이건희 회장 타계 이후 컬렉션들이 정리되면서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부호들의 컬렉션이 수장고로 한번 들어가면 언제 다시 빛을 볼지 알 수 없다는 점이 참 아쉽다.
  • 파라다이스시티 (인천): 호텔 입구에 있는 <골든 레전드 (Golden Legend)>가 유명하다. 신화에 나올 법한 날개 달린 말(페가수스)의 반쪽은 금빛으로, 나머지 반쪽은 근육이 드러난 해부도처럼 묘사되어 있다. 초기작의 ‘죽음’ 테마를 유지하면서도,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호텔 특성에 맞춰 혐오감을 줄이고 화려함을 더한 느낌이다.
  • 천안 아라리오 조각광장: 이곳에는 거대한 크기의 <자비 (Charity)><찬가 (Hymn)>가 설치되어 있다.

4. 자본주의 예술의 끝, 그리고 조롱

데미안 허스트는 자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작가다. 그리고 현대 미술계는 이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Severed Spots

미스치프(MSCHF)의 <Severed Spots>

아티스트 그룹 미스치프는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점 그림)’ 판화를 3만 달러에 구매했다. 그리고 그림 속 점 88개를 하나씩 오려내어 개당 500달러에 팔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남은 ‘껍데기(프레임)‘는 무려 26만 달러에 팔렸다.

  • 점 88개 판매 수익: 약 44,000 달러
  • 껍데기 판매 수익: 260,000 달러
  • 총매출: 약 300,000 달러 (원작의 10배)

3만 달러짜리 그림을 훼손했더니 10배의 가치가 창출된 이 아이러니. “도대체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통쾌한 사건이었다.

Keep it Spotles

뱅크시(Banksy)의 <Keep it Spotless>

2007년, 뱅크시 역시 허스트를 조롱했다. 허스트의 스팟 페인팅 위에 청소부 여성이 빗자루로 점을 들어 올리는 그림을 그리고 ‘티 없이 깨끗하게(Keep it Spotless)‘라는 제목을 붙였다. 결벽증적인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비꼰 유쾌한 한 방이었다.

5. 왜 데미안 허스트인가: Memento Mori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비난한다. 거대 자본의 힘으로 떴고, 수십 명의 조수를 고용해 공장처럼 작품을 찍어내며, 윤리적으로 불편한 소재를 사용해 관심을 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가장 좋아한다. 그가 ‘죽음’이라는 소재를 가장 직관적으로,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과거 고전 예술이 아름다움을 탐구했다면, 허스트는 터부시되던 죽음을 전면으로 끄집어냈다. 라틴어 격언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처럼, 인간과 동물은 결코 죽음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나의 가치관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죽음은 정말 엄청난 모험이 될 거야.” — 피터팬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인간이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독배를 들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신의 죽음을 사유하고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하지만 현대 국가와 사회는 생산성 감소를 우려해 죽음을 언급하는 것을 꺼리고, 적극적으로 삶을 연장하려 든다.

이런 시대에 죽음을 날 것 그대로 전시장에 올려놓는 허스트의 대담함이 나는 좋다.

For the Love of God

6. 버킷리스트: 나만의 ‘신의 사랑을 위하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리고 갖고 싶은 작품은 단연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이다.

2007년 발표된 이 작품은 18세기 사람의 실제 두개골에 백금 틀을 씌우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것이다. 제작비만 200억 원, 판매가는 1,000억 원에 달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죽음마저 돈으로 치장하려는 인간의 끝없는 허영심"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가보라. 얼마나 큰 화환을 세울지, 어떤 수의를 입힐지, 어떤 명당에 묻힐지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이 과연 이 해골과 얼마나 다른가?

나는 늘 이 작품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해골로 만든 것은 의미가 없다. 나는 ‘나의 해골’로 이 작품을 만들고 싶다.

살아있는 내 머리를 뜯어낼 수는 없으니, MRI나 CT 촬영 데이터로 두개골을 모델링하고 3D 프린터로 출력해 제작해 볼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의료 목적이 아닌 머리 전체 스캔은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과도한 방사선 노출 위험 때문에 권장되지 않아 잠시 미뤄둔 상태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다. 언젠가 기술이 더 발전하거나 기회가 닿는다면, 나는 내 두개골을 본딴 나만의 다이아몬드 해골을 반드시 만들어볼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데미안 허스트를, 그리고 죽음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